전락

문장 수집
어떤 장님을 맞은편 인도에까지 건너오도록 도와주고 헤어지면서 나는 그에게 인사를 했다 이 말씀입니다. 모자를 쓱 쳐들며 인사하는 동작은 분명 그 장님을 향한 게 아니었죠. 장님은 그걸 볼 수 없었으니까요. 그럼 누구를 향한 것일까요? 관객한테지요.
정말이지, 내가 버림받을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일깨운 감정은 사랑도 관대함도 아닌, 오직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내 생각에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고 싶은 욕망이었어요. … 하긴, 그 애정은 그것을 다시 얻게 되는 즉시 금방 짐스럽게 느껴졌어요. 짜증이 날 때면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당사자의 죽음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일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 즉, 나는 내 모든 애정을 내 주위에 대기시켜두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그걸 써먹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 고백하는 바이지만, 내가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전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 혹은 가능한 최대 대수의 존재들이 영원한 공백 상태로, 독립적인 삶을 갖지도 말고, 언제든 내가 부르기만 하면 즉각 응답할 태세로, 내가 큰 인심 써서 나의 빛을 베풀어줄 그날까지 고갈된 상태로 나만 쳐다보고 있어야한다는 거 였습니다. … 요컨대 내가 행복하게 살자면 내가 택하는 다른 사람들은 살지 말아야 했던 거예요. 그들은 오직 이따금 내가 기분 내켜서 주는 삶이나 얻어 살아야 한다는 식이었지요.
재력이란 말이죠, 친구님, 아직 무죄 석방은 못 되어도 집행유예는 되는 겁니다. 어쨌든 얻어놓고 볼 만한 거죠···.
겸손은 남의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이 되고, 겸양은 남을 이기는 데, 그리고 덕성은 남을 억압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존경을 원치 않았어요. 모든 사람에게서 골고루 나오는 존경이 아니었으니까요. 나 자신이 공감하지 않는데 그게 어찌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사실, 우리는 그 누구의 무죄도 단정할 수 없지만 반면에 모든 사람이 다 유죄라는 건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의 죄를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내 신념이고 또 내가 바라는 바입니다.
선생, 내가 대단한 비밀을 한 가지 가르쳐드리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매일이 최후의 심판이니까요.
핵심은 심판을 피하는 일이라는 제 말은 사실 잘못된 것이에요. 핵심은 가끔 큰 소리로 자신의 무자격을 공표하게 되더라도, 하고 싶은 짓은 다 하고 지내는 것입니다. … 내가 삶을 바꾼 건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남을 이용해요. 다만 내 과오를 고백하기 때문에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우선 나 자신의 천성을, 그 다음으로는 매력적인 참회를, 이렇게 두 번 즐길 수가 있는 겁니다.
아이구 떨려···. 물이 얼마나 차다고요! 그러나 안심하세요! 너무 늦었어요, 이젠. 언제나 너무 늦을 겁니다. 천만다행으로!
읽고 나서
1️⃣
클라망스의 고백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장님에게 모자를 들어 인사하는 행위였다. 장님은 볼 수 없는 그 인사를 굳이 했던 이유는 오직 나를 지켜 보는 관객들에게 내가 얼마나 예의 바른 사람인지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내가 평소에 했던 배려와 겸손이 의심스러워졌다. 나는 진심으로 타인을 위했던 걸까, 혹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 (자기만족) 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이용했던 걸까?
겸손은 남의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이 되고, 겸양은 남을 이기는 데, 그리고 덕성은 남을 억압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p.96
클라망스의 말처럼 겸손과 덕성은 타인을 억압하고 이기기 위한 가장 세련된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요컨대 내가 행복하게 살자면 내가 택하는 다른 사람들은 살지 말아야 했던 거예요. 그들은 오직 이따금 내가 기분 내켜서 주는 삶이나 얻어 살아야 한다는 식이었지요.
p.78
“내가 택하는 다른 사람들은 살지 말아야 했다.”는 그의 말은 지독한 나르시스즘의 극치를 보여 준다. (너무 재수없었음)
그는 타인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 줄 때만 작동하는 자판기나 소품처럼 여긴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정말정말 인생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오만한 사람~)
3️⃣
아이구 떨려···. 물이 얼마나 차다고요! 그러나 안심하세요! 너무 늦었어요, 이젠. 언제나 너무 늦을 겁니다. 천만다행으로!
p.159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문장. 나는 이 문장을 다시 그 다리 위로 돌아가도 여자를 구하지 않겠다는, 아니 구할 기회가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비겁한 안도감으로 해석했다. 또한 청자, 나아가 독자 역시 그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결국, 클라망스는 마지막까지 참회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오가 오늘 들려 준 해석은 너무너무 참신하고 카뮈가 그걸 의도해서 쓴 거라면 이렇게까지 해석하기 위해서는 어떤 근육을 길러야하지… ㅎ 하는 생각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