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오늘 좋은 기회를 얻어, 평소 너무나도 좋아하고 동경하던 분과 티타임을 했다.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오래 남는 말들이 있었다. 그냥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감상으로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핑계 삼아, 요즘 내가 나 자신과 일을 바라보는 방식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문제는 그 인정이 대부분 내 안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역치가 높은 편이라, 내가 나를 잘했다고 인정해 주는 일은 별로 없다. 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줄 때는 꽤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잘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컸다. 여기서 말하는 '잘한다'는 여러 종류의 잘함 중에서도 순수한 개발 역량에 가깝다. 어떤 기술을 깊이 이해하고 있고, 처음 보는 문제에서도 빠르게 본질을 짚어내고, 내가 한참을 공부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이미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늘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저렇게 많은 것을 알지 못할까.
나는 왜 저런 생각까지 도달하지 못할까.

그리고 그 질문은 매번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진짜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엔지니어란 무엇일까.
잘하는 엔지니어란 무엇일까.

나는 꽤 오랫동안 이 질문에 아주 좁은 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기술적으로 깊어야 한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남들이 모르는 것도 알아야 한다.

소위 말하는 Geek한 사람, 누가 보더라도 "저 사람은 진짜 개발자다"라고 느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르는 기술을 알아가는 과정에는 분명 즐거움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그 즐거움 뒤에는 언제나 조금의 두려움도 따라왔다.

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그래서 배움이 순수한 호기심에서만 출발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배우고,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알고 싶어 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내가 가짜 엔지니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기술을 좋아했던 만큼이나, 기술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그 마음을 놓아 보려고 한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진짜 개발자'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것도 알아?"의 '이것'까지 전부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못한 나를 부끄러워하면서 계속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서 나 자신을 평가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모든 종류의 잘함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늘 대화에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말이 있다.

'진짜 개발자'라고 불리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움츠러들지 않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조직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 사람에게 모든 종류의 잘함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잘함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곳.

누군가는 기술적으로 아주 깊을 수 있고, 누군가는 사용자의 작은 불편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언어로 설명하는 데 뛰어나고, 누군가는 여러 직군 사이의 관점을 연결한다. 또 누군가는 팀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기준과 구조를 만든다.

조직은 한 명의 뛰어난 사람이 이끌어 가는 것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지 못하는 것만 바라 볼 이유도 조금 줄어든다.

못하는 것이 있어도 괜찮다.

물론 부족한 부분을 외면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끝없이 부러워하는 데 쓰던 에너지를, 내가 가진 장점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데 사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실무를 몇 년 경험하면서 이제야 조금씩 내가 어떤 일을 오래 하고 싶은지, 프로덕트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나는 사용자 경험이 재미있다.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제품을 사용하고, 무엇을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어디에서 망설이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아름다운 것도 좋아한다. 잘 정돈된 화면, 이유 있는 간격, 자연스러운 인터랙션, 일관된 규칙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직접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더 쉽게 세상에 꺼내 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끌린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구현하는 과정의 높은 비용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하게 존재했던 것이 기술적인 제약이나 도구의 불편함 때문에 아이디어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무엇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생각과 결과물 사이의 거리를 줄여 주는 것.

내가 좋은 기준을 만들고, 반복되는 결정을 시스템에 녹이고, 복잡한 것들을 조금 더 다루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 두는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디자인 시스템에 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의 버튼을 잘 만드는 것보다, 수십 명의 메이커가 매번 같은 고민을 반복하지 않고 자신이 정말 풀고 싶은 문제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하는 것. 좋은 선택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만들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더 높은 완성도로 구현할 수 있도록 바닥을 단단하게 만들어 두는 것.

나에게 시스템은 사람을 규격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제약과 복잡성을 대신 떠안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더 잘 이해하고 싶다. 개발자가 구조를 바라보는 관점과 디자이너가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 사이에서 좋은 것들을 번역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아직은 거창하게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보다 파운데이션을 설계하고, 좋은 기준을 함께 논의하고, 우리가 만든 것을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는 쪽에 가깝다.

그래도 결국 이 관심이 향하는 곳은 비슷한 것 같다.

직접 가장 많은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것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더 멀리 갈 수 있게 만드는 것.

사람이 가진 가능성이 아이디어로만 남지 않도록 돕는 것.

어쩌면 내가 오래 하고 싶은 일은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엔지니어와 좋은 회사원의 기준은 같을까

한편 회사라는 맥락에서 생각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회사에 소속된 사람은 무엇을 가장 잘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회사가 필요로 하는 문제를 적절한 비용으로 해결하고, 비즈니스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일한다. 회사는 무한한 시간과 자원을 가진 연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어떤 결과에 돈을 쓰고, 어떤 결과에 보상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사람’과 ‘회사에 가장 큰 가치를 만든 사람’은 항상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멋진 기술을 사용하는 것보다 평범한 기술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보다 만들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편이 더 큰 기여일 수도 있다.

이 차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엔지니어링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잘하는 엔지니어는 단순히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언제 꺼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큼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능력.

이것 역시 엔지니어링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더욱 그렇다.

AI 덕분에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비용이 너무나 낮아졌다. 예전이었다면 아이디어 단계에서 끝났을 것들이 이제는 몇 시간 만에 프로토타입이 된다.

발산이 쉬워진 시대다. 그래서 오히려 발산을 중재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게 정말 지금 필요한가.
이 정도의 비용을 들일 만큼 가치가 있는가.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가 맞는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있고, 만드는 것뿐 아니라 유지하고 설명하고 버리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 빠르게 만들어 보는 능력만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멈춰 설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기술은 가능성의 범위를 넓혀 주지만, 가능해진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 필요는 없다.

결국 좋은 판단은 더 많은 것을 만드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무엇에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것인지 선택하는 데서도 나온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직 그대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나는 여전히 잘하고 싶다.

다만 예전에는 '잘한다'는 것을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있는가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내가 있는 것으로 인해 함께 일하는 사람의 생각이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막연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결과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되고 싶고, 내가 먼저 겪은 시행착오가 다른 사람에게는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고 싶다.

혼자 많은 답을 가진 사람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가진 답까지 더 잘 쓰이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동료라는 것도 어쩌면 그런 사람에 가까울 것 같다.

함께 일했을 때 팀의 판단이 조금 더 좋아지고, 불필요한 비용은 줄어들고, 각자가 자신이 잘하는 일에 더 오래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 주는 사람.

나는 지금까지 그런 동료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당연히 더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내가 무엇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더 잘 연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싶다.

세상이 가끔 먼저 나에게 다가온다는 감각

그리고 나는 내가 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삶에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내가 애써 어떤 문을 찾아가 두드렸다기보다, 어느 순간 문이 먼저 열리고 그 안으로 초대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기회를 얻고, 내가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 예상보다 훨씬 큰 신뢰가 되어 돌아오는 경험들.

그런 순간이 반복될 때면 조금 유치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종종 신이 나를 꽤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쫓아가 어렵게 무언가를 얻어냈다는 감각보다, 세상이 가끔 나를 자기 안으로 끌어당겨 자리를 내어주는 듯한 감각이 있다.

삶에는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어떤 시기에 어떤 기회가 오는지, 누군가가 나의 가능성을 내가 믿는 것보다 먼저 믿어주는 일 같은 것들. 그것은 내가 잘해서 얻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큰 것들이고, 그래서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에 가깝다.

지금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도 그렇다. 내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가능성을 축소하기보다 실제 책임과 기회로 바꾸어 주었고, 아직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도 먼저 해볼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었다.

돌아보면 사람의 가능성은 혼자 증명해서 얻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누군가가 먼저 가능성을 믿어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런 신뢰를 많이 받아왔다. 내가 받은 것이 단순히 '기회'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건네진 신뢰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그런 환경이 되어 주고 싶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도록, 아직 형태가 없는 생각이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한 사람이 가진 가능성이 현실에 닿기까지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사람.

어쩌면 내가 조직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만들고 싶은 시스템도 결국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가진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운칠기삼

흔히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운이 칠이고 재주가 삼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이 말을 '그래도 결국 실력이 있어야 기회를 잡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운이 칠이라는 것은 우리가 삶의 많은 부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좋은 기회와 좋은 사람, 좋은 시기는 내가 계획한다고 해서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지 않는 것이 있고, 반대로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너무 좋은 것이 나에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머지 삼을 준비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시 한번 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자리를 내어주었을 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을 흘려 보내지 않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받은 행운을 나에게서 끝내지 않고, 다시 누군가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사용하는 것.

나는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노력하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언젠가 내 앞에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지금의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많이 지난 뒤돌아 봤을 때,

그때 나는 왜 더 잘해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만큼은 남기고 싶지 않다.

아직도 엔지니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기술을 깊게 아는 사람인지,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인지, 좋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인지, 동료가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인지.

아마 그 모든 모습이 엔지니어일 것이다. 그리고 그중 모든 모습을 내가 가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좋은 엔지니어가 되어 가면 된다.

조금 덜 부끄러워하고,
조금 덜 남을 바라보고,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들여다 보면서.

내가 받은 좋은 것들을 잘 붙잡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서.

그렇게 계속 잘해 보고 싶다.